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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4화 – 본전의 기준

"60개만 빼라." 세 시간 자고 불려 나온 창수, 5분마다 울리는 전화, 그리고 두 시간 만에 1,500만 페소만 남은 디파짓.

솔레어 정문 앞에서 전화를 받는 창수

등장인물

  • 배창수: 마닐라 캐주얼 정켓 소속 에이전트, 28세. 세 시간 자고 불려 나왔다.
  • 남궁 회장: 부산 건설회사 대표, 50대 후반. 태양성에 6,600만 페소를 맡겼다.
  • 태양성 직원 마크: 솔레어 태양성 룸 매니저. 창수에게 계속 전화를 건다.

30분

택시 안에서 창수는 태양성에 전화를 걸었다.

창수: “남궁 회장님 디파짓에서 60개 아웃해 주세요. 회장님이 직접 가실 겁니다.”

마크: “60개요? 확인했습니다.”

마크 목소리에 아주 미세한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창수는 그게 기분 나빴다. 카지노 직원이 웃는 순간은 정해져 있다. 손님 돈이 다시 테이블로 돌아올 때다.

솔레어 정문까지 30분도 안 걸렸다. 차에서 내리는데 휴대폰이 또 울렸다. 마크였다.

마크: “창수 씨, 회장님이 찾으십니다.”

창수는 걸음을 멈췄다.

회장님이 직접 전화하지 않고 직원을 통해 자기를 찾는다. 이유는 하나다. 회장님이 지금 테이블에 앉아 있고, 손을 뗄 수 없다는 뜻이다.

500개

칩 없는 테이블에 앉은 회장님에게 칩을 가져가는 창수
칩 없는 테이블에 앉은 회장님에게 칩을 가져가는 창수

태양성 룸에 들어서자 회장님이 보였다.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 새 셔츠. 하지만 테이블 위에 칩이 없었다.

회장님: “창수야, 500개만 가져와라.”

창수: “회장님, 아까 60개…”

회장님: “500만 가져와. 그리고 넌 올라가서 쉬고 있어. 내 방에서.”

500개. 500만 페소. 1억 2,500만 원.

60개를 뺀 지 한 시간도 안 됐다. 그 6,000만 페소가 어디로 갔는지 창수는 묻지 않았다. 아니, 물을 필요가 없었다. 칩이 없다는 건 그런 뜻이다.

창수는 캐셔에서 500개를 받아 회장님 앞에 놓았다. 회장님은 고개만 끄덕였다. 창수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스위트룸의 5분

빈 맥주병이 남은 스위트룸에서 휴대폰을 보는 창수
빈 맥주병이 남은 스위트룸에서 휴대폰을 보는 창수

회장님 스위트룸은 새벽에 나갈 때 그대로였다. 룸서비스 접시, 빈 맥주병 여섯 개, 소파 위의 재킷.

창수는 재킷을 벗고 소파에 앉았다. 셔츠 단추를 하나 푸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5분.

딱 5분 만이었다.

마크: “창수 씨, 회장님이 500개 더 가져오시랍니다.”

창수는 벗어 둔 재킷을 다시 집어 들었다.

반복

엘리베이터 앞 복도에서 전화를 기다리는 창수
엘리베이터 앞 복도에서 전화를 기다리는 창수

그다음부터는 창수도 순서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500개. 엘리베이터. 스위트룸. 전화. 500개. 엘리베이터. 1,000개. 엘리베이터. 500개.

스위트룸 침대에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누우면 전화가 왔다. 앉아 있어도 전화가 왔다. 결국 창수는 엘리베이터 앞 복도에 서서 기다렸다. 전화가 오면 바로 내려갈 수 있게.

복도 창으로 마닐라 베이가 보였다. 새벽에 회장님과 함께 동이 트는 걸 봤던 그 바다였다. 그때는 분홍색이었다. 지금은 한낮 햇빛에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두 시간.

토탈 두 시간이 지났을 때, 마크가 전화로 숫자를 알려 줬다.

마크: “회장님 디파짓, 1,500만 남으셨습니다.”

3억 7,500만 원

창수는 내려갔다.

회장님은 테이블에 앉아 그림판을 보고 있었다. 뱅커와 플레이어가 아무렇게나 섞인, 줄도 핑퐁도 아닌 그림. 회장님 앞에 칩이 몇 개 남아 있었다.

창수는 회장님 옆에 앉아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창수: “회장님. 지금 디파짓 1,500만 남았습니다.”

회장님: “알아.”

창수: “1,500만이면 3억 7,500만 원입니다. 회장님 2,500만 원 들고 오셨습니다. 지금도 3억 5천을 따고 계신 겁니다.”

회장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수: “한국 들어가셨다가 다시 정비해서 오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긴 침묵이 흘렀다. 딜러가 카드를 섞는 소리만 났다.

회장님: “그래. 알았다.”

창수는 속으로 크게 숨을 내쉬었다. 됐다. 3억 5천이면 된다. 시곗줄 자국 난 손목에 다시 시계를 채울 수 있는 돈이다.

회장님: “그럼 다 가져와.”

창수: “네?”

회장님: “1,500만 다 찾아와. 그리고 홍콩달러 칩으로 바꿔.”

본전

캐셔 앞에서 디파짓 영수증을 내려다보는 창수
캐셔 앞에서 디파짓 영수증을 내려다보는 창수

창수가 나한테 이 이야기를 할 때, 이 대목에서 한참 술을 안 마셨다.

형, 사람 마음이 그렇더라고요. 회장님한테 본전은 이제 2,500만 원이 아니었어요. 100만 페소가 아니었어요. 6,600만 페소였어요. 어젯밤 태양성 영수증에 적힌 그 숫자.

6,600만이 본전인 사람한테 1,500만은 3억 5천을 딴 돈이 아니에요. 13억을 잃은 돈이에요.

창수 말이 맞았다. 이 바닥에서 십 년을 일하며 나도 수없이 봤다. 딴 사람은 딴 돈을 따지 않는다. 제일 높이 올라갔던 숫자를 기준으로 잃은 돈만 센다. 그리고 그 숫자를 되찾으려고 다시 앉는다.

회장님에게 1,500만 페소는 남은 돈이 아니었다. 되찾아야 할 돈의 시작점이었다.

창수: “회장님, 홍콩달러 게임은…”

회장님: “솔레어 2층 태양성. 거기 조용하잖아.”

창수는 알았다. 회장님의 3단계였다. 매주 2단계에서 꺾이느라 한 번도 제대로 가 보지 못한 그곳.

그런데 이번엔 순서가 거꾸로였다. 끝판을 먼저 보고, 2단계에서 꺾이고, 이제 3단계로 가고 있었다.

창수는 캐셔 창구로 걸어갔다. 1,500만 페소 출금 전표에 사인을 받는 동안 지갑 속 영수증을 꺼내 봤다. 6,600만 페소. 0이 몇 개인지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셌다.

열두 시간 전에는 그 숫자가 기적이었다.

지금은 빚처럼 보였다.

(5화에서 계속)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소설입니다. 등장인물 이름은 가명이며, 도박을 권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