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6화 – 부산의 커피숍
띵동, 띵동. 휴대폰 진동 여섯 번에 6억이 바다를 건너고, 10억은 해운대 커피숍 캐리어 속으로. 그리고 "너 써라" 한마디.

등장인물
- 배창수: 마닐라 캐주얼 정켓 소속 에이전트, 28세. 16억을 네 시간 만에 정리해야 한다.
- 남궁 회장: 부산 건설회사 대표, 50대 후반. 17억 400만 원을 땄다.
- 환전업자 김 사장: 마닐라와 한국을 오가는 돈을 맞바꿔 주는 사람.
- 운반책: 김 사장 밑에서 현금 다발을 전달하는 젊은 남자.
- 회장님 지인 박 사장: 부산에서 회장님 대신 돈을 받으러 나가는 사람.
첫 번째 지시
회장님: “1억씩 여섯 군데로 보내라. 나머지 10억은 5만 원짜리로 정리해서 부산으로.”
새벽 네 시 반. 회장님은 메모지에 계좌 여섯 개를 적어 창수에게 건넸다. 은행도, 이름도 제각각이었다. 창수는 묻지 않았다. 어디에 빚이 있는지, 누구에게 갚는 돈인지.
카지노에서 딴 페소를 한국 계좌로 옮기는 방법은 하나다. 환전업자.
창수는 김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인데도 신호가 두 번 만에 갔다. 이 바닥 사람들은 잠을 안 잔다.
창수: “사장님, 큰 거 하나 있습니다. 16억이요.”
김 사장: “…다시 말해 봐.”
띵동, 띵동

방식은 단순했다.
김 사장 쪽에서 한국 계좌로 1억을 쏜다. 회장님 휴대폰에 입금 알림이 뜬다. 띵동. 회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면, 창수가 태양성 디파짓에서 1억어치 페소를 김 사장 쪽으로 넘긴다.
띵동. 1억. 페소 넘기고.
띵동. 1억. 페소 넘기고.
여섯 번. 30분이 안 걸렸다.
창수는 그 띵동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깨가 움찔했다고 했다. 6억이 공기처럼 바다를 건너갔다. 은행도, 서류도, 도장도 없이. 회장님 휴대폰의 작은 진동 여섯 번이 전부였다.
두 번째 지시

회장님: “나머지 10억은 언제 되냐.”
창수: “오늘 저녁 6시로 준비시켜 놨습니다.”
회장님: “어디서.”
창수: “부산 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 커피숍입니다. 김 사장님 쪽 사람이 들고 나갑니다.”
회장님이 휴대폰을 들어 부산에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박 사장, 나다. 오늘 6시에 파라다이스 커피숍 가서 돈 좀 받아 놔라. 일일이 셀 필요 없어. 5만 원짜리 다발로 올 거니까 다발 수만 확인해.”
수화기 너머에서 박 사장이 뭐라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회장님: “10억.”
오후 6시, 해운대

창수는 그 장면을 직접 보지 못했다. 마닐라에서 전화로만 들었다.
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 1층 커피숍. 창가 자리에 박 사장이 앉아 있었다. 6시 정각, 캐리어 두 개를 끄는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김 사장 밑에서 일하는 운반책이었다.
남자가 박 사장 앞에 앉았다. 커피를 시키지 않았다. 캐리어 하나를 테이블 옆에 세우고 지퍼를 반쯤 열었다. 5만 원짜리 다발이 빈틈없이 차 있었다.
운반책이 김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운반책: “만났습니다.”
김 사장이 마닐라에서 창수에게 말했다.
김 사장: “만났대. 받는 쪽 확인되면 페소 넘겨.”
박 사장이 회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사장: “회장님, 받았습니다. 다발 수 맞습니다.”
회장님: “어, 수고했네.”
회장님이 창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창수가 태양성 직원에게 사인을 했다. 마지막 페소가 김 사장 쪽으로 넘어갔다.
16억이 정리되는 데 서너 시간이 걸렸다. 창수 인생에서 가장 짧고 가장 긴 서너 시간이었다.
1억 300만 원

회장님: “창수야, 다 정리됐냐.”
창수: “네. 태양성 디파짓에 1억 400만 원어치 남았습니다. 이건 어떻게 할까요.”
회장님: “비행기 표부터 끊어라. 오늘 들어가야겠다. 피곤하다.”
창수는 오후 비행기 1등석 편도를 끊었다. 표값을 빼니 1억 300만 원이 남았다.
창수: “회장님, 남은 1억 300만 원은…”
회장님이 재킷을 입으면서 말했다.
회장님: “너 써라.”
창수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창수: “네?”
회장님: “며칠 동안 성질 더러운 나 수발드느라 고생했잖아. 제대로 못 챙겨 줘서 미안하다. 그거 너 써라, 이 녀석아.”
창수는 대답을 못 했다. 고맙다는 말도 안 나왔다. 그냥 고개를 숙였다. 숙인 채로 한참 있었다.
스물여덟 살. 1억 300만 원. 팁으로.
공항

니노이 아키노 공항 1등석 카운터. 회장님은 올 때와 똑같이 창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회장님: “다음 주에 보자.”
매주 하던 인사였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게 들렸다. 회장님 손목에는 여전히 시계가 없었다. 창수는 생각했다. 다음 주에 오실 때는 그 하얀 자국 위에 시계가 다시 채워져 있겠지.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회장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창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공항 주차장으로 걸어가면서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창수는 그날 밤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 그날이 제 인생에서 제일 좋은 날이었어요.
그리고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창수: “딱 보름 동안은요.”
(7화에서 계속)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소설입니다. 등장인물 이름은 가명이며, 도박을 권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