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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10화 – 국밥값

    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10화 – 국밥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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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10화 – 국밥값

    샹그릴라의 마지막 저녁, "비행기 표 좀 알아봐 줘라", 그리고 공항에서 건넨 꼬깃꼬깃한 국밥값 50만 원. 시리즈 마지막 화.

    샹그릴라 일식당에서 아이에게 초밥을 덜어 주는 회장님

    등장인물

    • 나(강도윤): 마카오 에이전트 10년 차. 창수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다.
    • 배창수: 세부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전 정켓 에이전트. 회장님을 배웅한다.
    • 남궁 회장: 부산 건설회사 대표. 400만 페소를 들고 마지막 저녁을 산다.

    샹그릴라

    막탄 샹그릴라 리조트 일식당. 세부에서 제일 비싼 일식집이었다.

    회장님이 코스를 시켰다. 1인분 8,800페소. 필리핀 직장인 한 달 월급이 8천에서 1만 2천 페소다. 한 사람 저녁값이 한 달 월급이었다.

    그저께까지 택시비가 없어서 막탄에서 라푸라푸까지 걸어오던 사람이었다.

    창수의 아내와 아들도 함께였다. 아이는 회장님 옆에 앉아 연어 초밥을 집어 먹었다. 회장님은 아이 접시에 계속 음식을 덜어 줬다.

    석 달 만에 처음으로 회장님이 크게 웃었다.

    300만 원과 20개

    봉투를 내밀며 고개 숙인 회장님
    봉투를 내밀며 고개 숙인 회장님

    식사가 끝나 갈 무렵, 회장님이 말했다.

    회장님: “창수야. 집에 쌀 떨어졌다더라. 형수한테 300만 원만 보내 줘라. 남은 페소에서.”

    창수: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정리해 온 거 있지. 20개만 줘 봐라.”

    창수가 20만 페소를 꺼냈다. 원화로 500만 원.

    회장님은 그걸 창수 아내 앞에 내밀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회장님: “제수씨, 석 달 동안 정말 미안했습니다. 내가 남의 집에서 못 할 짓을 했어요.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생활비에 보태 쓰세요.”

    자기 집에는 300만 원. 창수 집에는 500만 원.

    창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이게 회장님이구나. 돈은 없어도 가오는 있는 사람. 도박꾼에게도 의리가 있다면, 이런 거구나.

    두 시간

    비행기 표 부탁 전화에 얼어붙은 창수
    비행기 표 부탁 전화에 얼어붙은 창수

    식당을 나오며 회장님은 프런트에서 3일짜리 스위트룸을 무료로 받았다. 마바리장에서 굴린 롤링 덕분이었다.

    회장님: “창수야, 제수씨랑 애기 데리고 들어가라. 형은 이제 생바할 거니까, 차분하게 할 거다.”

    창수는 회장님을 호텔에 내려 주고 집으로 갔다.

    두 시간 뒤, 전화가 왔다.

    회장님: “창수야. 비행기 표 좀 알아봐 줘라. 형 내일 가야겠다.”

    창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숙면

    새벽까지 발코니에서 이야기를 나눈 두 사람
    새벽까지 발코니에서 이야기를 나눈 두 사람

    이 바닥에 오래 있으면 알게 되는 게 있다.

    돈을 따면 잠이 안 온다. 머릿속에서 칩이 계속 굴러간다. 더 딸 수 있을 것 같고, 내일 또 앉고 싶다.

    그런데 가진 걸 전부 쏟아붓고, 더 나올 데도 없고, 빌릴 데도 없을 때. 이제 진짜 끝이라는 걸 알게 될 때. 그때 사람은 숙면을 한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나도 마카오에서 십 년 가까이 일하며 단 하루도 편하게 자 본 적이 없다. 새벽 두 시에 전화가 오면 열에 아홉은 돈 빌려 달라는 전화였다. 그래서 안다. 이제 그만 가겠다는 말이 어떤 무게인지. 그리고 그런 밤에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창수도 알았다.

    창수는 아내에게 먼저 자라고 하고 다시 호텔로 갔다. 그리고 회장님 옆에 앉았다. 둘은 밤새 담배를 피웠다. 한국 가서 뭘 할지, 회사는 어떻게 정리할지, 사모님한테는 뭐라고 할지. 회장님 인생 설계를 새벽까지 같이 했다.

    창수는 그날 밤 한숨도 안 잤다. 회장님은 새벽에 잠깐 잠들었다. 아주 깊게.

    국밥값

    공항에서 국밥값 봉투를 건네는 창수
    공항에서 국밥값 봉투를 건네는 창수

    필리핀은 체류 기간이 넘으면 비자 연장을 해야 출국할 수 있다. 여행사에 4천 페소를 주면 급행으로 처리해 준다. 창수는 아침 일찍 여행사에 들러 비자를 받고, 정오가 조금 넘은 비행기 표를 끊었다.

    막탄 공항 출국장 앞.

    창수가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가이드 일로 모아 둔 쌈짓돈이었다. 꼬깃꼬깃한 50만 원.

    창수: “형님, 한국 가시면 국밥이라도 한 그릇 드세요.”

    회장님은 봉투를 한참 내려다봤다.

    3년 전, 이 사람은 창수에게 1억 300만 원을 “너 써라” 하며 던져 줬다. 오늘은 창수가 50만 원을 국밥값이라며 내밀었다.

    회장님이 봉투를 받았다. 그리고 창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처음 마닐라 공항에서 만났을 때처럼.

    출국장 안으로 걸어가는 회장님 뒷모습이 3년 전보다 한참 작았다.

    마지막 전화

    그날 밤, 창수는 잠을 못 잤다. 한국에 도착해서 집으로 안 가고 다른 데로 가실까 봐.

    밤 열한 시, 전화가 왔다.

    회장님: “창수야, 형 잘 도착했다. 걱정하지 마라.”

    창수: “형님…”

    회장님: “형 이대로 안 죽는다. 큰돈 들어오면, 다른 데 안 가고 너한테 갈게. 네가 형한테 해 준 거, 형 가슴에 다 묻어 두고 있다. 곧 보자.”

    그 “곧 보자”가 몇 년째다.

    창수는 아직 회장님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큰돈은 아직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다.

    소주 세 병

    출국장으로 걸어가는 회장님의 뒷모습
    출국장으로 걸어가는 회장님의 뒷모습

    여기까지가 그날 밤 창수가 나한테 해 준 이야기다.

    이야기를 마친 창수는 남은 소주를 내 잔에 따라 줬다.

    창수: “형, 사람들이 이런 얘기 들으면 17억 딴 것만 기억하더라고요. 2,500만 원으로 17억. 그것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바닥에서 십 년을 일하며 내가 본 것은 이거다. 크게 따 본 사람은 크게 잃는다. 한 판에 2억을 걸던 사람도 결국 택시비가 없어서 밤길을 두 시간 반 동안 걷는다. 1미터 높이에서는 뛰어내려도 괜찮다. 하지만 20층에서 떨어지면 끝이다.

    카지노에 가더라도, 게임을 하더라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그 높이를 넘지 않는 사람만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남궁 회장은 아직 돌아오는 중이다.

    (끝)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소설입니다. 등장인물 이름은 가명이며, 도박을 권하지 않습니다.

  • 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9화 – 마지막 750

    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9화 – 마지막 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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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9화 – 마지막 750

    "여보, 쌀 떨어졌어요." 짜내고 짜낸 750만 원으로 시작한 생바. 30개가 700개가 되기까지, 그리고 맥스 세 번.

    다시 높게 쌓인 칩 앞의 회장님과 창수

    등장인물

    • 배창수: 세부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전 정켓 에이전트. 회장님의 마지막 판을 지킨다.
    • 남궁 회장: 부산 건설회사 대표. 짜내고 짜낸 750만 원을 들고 나간다.
    • 병풍들: 워터프런트 마바리장에서 회장님 뒤로 몰려든 현지인들.
    • 핏보스: 워터프런트 테이블의 맥스를 올려 주는 남자.

    070

    집전화를 붙잡고 빨래를 너는 회장님
    집전화를 붙잡고 빨래를 너는 회장님

    석 달 동안 회장님 하루는 전화로 시작해서 전화로 끝났다.

    창수 집에 있는 인터넷 전화, 070 번호. 회장님은 그 수화기를 붙잡고 살았다. 100만이든 200만이든, 한국 어딘가에서 돈을 구해야 했다.

    돈을 못 구한 날은 집안일을 했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었다. 창수 아들과 놀아 줬다. 차를 타고 세부 시내 쇼핑몰에 가서 장난감을 사 주기도 했다. 아이는 회장님을 할아버지처럼 따랐다.

    창수는 회장님을 친형처럼 모셨다. 돈 있을 때는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하다가 돈 떨어지니까 대접이 달라졌다는 소리, 그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다 똑같다. 큰돈을 굴리던 사람일수록 작은 것에 상처받는다.

    회장님도 알았을 것이다. 그 대접이 오히려 가시방석이었다는 걸.

    쌀

    쌀 떨어졌다는 전화를 받은 회장님
    쌀 떨어졌다는 전화를 받은 회장님

    어느 날 저녁, 회장님 휴대폰이 울렸다. 한국이었다. 사모님.

    회장님이 받았다. 창수는 부엌에 있었는데도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들렸다. 짧은 한마디였다.

    “여보, 쌀 떨어졌어요.”

    회장님은 아무 말도 못 했다. 한참 수화기를 귀에 대고 있다가 끊었다.

    그날 이후로 회장님은 한국에서 오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750

    방을 알아봐 달라던 다음 날 아침이었다.

    회장님: “창수야. 형 오늘 생바 할란다.”

    생바. 생활 바카라. 큰판 대신 작은 돈으로 조금씩 따서 생활비를 버는 바카라. 한 판에 2억, 2억 5천을 때리던 사람이 생바를 하겠다고 했다.

    그날 열두 시, 한국 돈 750만 원이 들어왔다. 원래 500 정도 온다고 했다. 마른 수건도 짜면 물이 나온다. 회장님은 어딘가에서 짜내고 또 짜내서 750을 만들었다.

    창수: “형님, 혹시라도 이게 지시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회장님: “한국 가야지 뭐. 할 만큼 했고, 갈 데까지 갔는데 안 되는 걸 어쩌겠냐.”

    창수: “큰돈 들어온다고 하셨잖아요.”

    회장님: “그건 기약이 없다. 여기까지만 해 보고 안 되면 들어갈란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750만 원. 30만 페소. 3년 전 COD에서 한 판에 걸던 돈의 30분의 1도 안 됐다. 이 바닥 말로 뱅커 똥만큼밖에 안 되는 돈이었다.

    30개

    회장님 뒤로 몰려든 현지인 병풍
    회장님 뒤로 몰려든 현지인 병풍

    회장님: “오늘은 라푸라푸 그 작은 데 말고 큰 데로 가자.”

    두 사람은 세부 시티 워터프런트로 갔다. 마바리장. 현지인들이 몰리는 일반 테이블 구역이다.

    미니멈 500페소. 맥스는 높아 봐야 10만, 20만.

    회장님이 30개를 꺼냈다. 1만 페소짜리 칩 30개.

    1억 5천을 걸 때도 신중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1만, 2만, 5만을 걸 때도 그보다 더 신중했다. 칩 하나를 놓기 전에 그림을 몇 번이나 다시 봤다. 이게 인생 마지막 돈이었다.

    먹고, 먹고, 먹고.

    한국 사람이 5만, 10만씩 때리기 시작하자 테이블 뒤로 현지인들이 몰려들었다. 병풍이 쫙 섰다. 그리고 회장님이 건 자리 뒤에 자기 칩을 얹기 시작했다. 300페소, 500페소. 회장님 운에 올라타려는 거였다.

    창수는 뒤에서 그 칩들을 정리했다. 맥스를 넘지 않게, 회장님 배팅이 밀리지 않게.

    30개가 150개가 됐다.

    150개

    회장님: “창수야, 올라가자. 여기는 미니멈이 작아서 안 되겠다.”

    두 사람은 VIP 쪽으로 옮겼다. 미니멈을 높이면 맥스도 올라간다.

    회장님 손이 달라졌다. 150개에서 30개, 50개씩 나갔다. 3년 전 그 빠따가 살아나고 있었다.

    회장님: “맥스 올려 달라고 해라.”

    맥스 50만 페소. 3년 전 맥스 800을 외치던 사람이 50에서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쌍줄이 내려왔다. 뱅커 둘, 플레이어 둘, 뱅커 둘. 그림이 계단처럼 깨끗하게 떨어졌다. 회장님은 그 계단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500개.

    500개

    회장님: “옆 테이블 열어 달라고 해라. 맥스 100으로.”

    이제 100개씩 나갔다. 30개, 50개, 100개. 업, 다운, 업, 다운.

    창수는 숨이 막혔다. 솔레어 2층의 적막이 떠올랐다. 카드 긁는 소리. 서걱, 서걱.

    700개.

    700만 페소. 1억 7,500만 원. 750만 원으로 들어와서.

    천만 페소가 코앞이었다. 천만이면 2억 5천. 창수는 속으로 기도했다. 여기서만 멈추시라고. 아니, 천만만 찍고 멈추시라고.

    700개

    맥스가 꺾이는 순간의 회장님과 창수
    맥스가 꺾이는 순간의 회장님과 창수

    회장님이 맥스를 다시 올렸다. 회심의 100.

    죽었다.

    다시 100.

    죽었다.

    다시 100.

    창수는 마지막 판을 기억한다. 플레이어 6, 뱅커 7. 힘 한 번 못 써 보고 한 방에 넘어갔다.

    맥스 세 번이 연달아 꺾였다. 700개가 400개로 쪼그라들었다.

    회장님 손이 다시 칩으로 갔다.

    창수: “형님.”

    회장님 손이 멈췄다.

    창수: “원 없이 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잠깐 쉬셨다가, 식사라도 하시고 하시죠.”

    예전의 회장님은 이런 말에 멈추는 사람이 아니었다. COD 8층에서도, 솔레어 2층에서도.

    회장님은 한참 테이블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칩에서 손을 뗐다.

    회장님: “그래. 알았다.”

    창수가 400개를 정리하는 동안 회장님이 말했다.

    회장님: “창수야. 제수씨하고 애기 좀 불러라. 오랜만에 맛있는 거 먹자.”

    (10화에서 계속)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소설입니다. 등장인물 이름은 가명이며, 도박을 권하지 않습니다.

  • 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8화 – 샹들리에

    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8화 – 샹들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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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8화 – 샹들리에

    제이파크 오링벳, 초점 없는 눈으로 올려다본 샹들리에. 500페소 테이블과 막탄에서 라푸라푸까지 두 시간 반을 걸어온 새벽.

    오링벳 뒤 샹들리에를 올려다보는 회장님

    등장인물

    • 배창수: 세부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전 정켓 에이전트. 회장님을 끝까지 모시기로 한다.
    • 남궁 회장: 부산 건설회사 대표. 제이파크에서 다시 무너지기 시작한다.
    • 제이파크 딜러: 표정 없이 칩을 쓸어 가는 남자 딜러.
    • 마바리장 현지인들: 500페소 테이블에서 회장님과 함께 카드를 까는 필리핀 사람들.

    첫째 날, 제이파크

    제이파크 카지노 문을 들어서는 순간 창수는 걸음을 멈췄다.

    공기가 무거웠다. 이 바닥에 몇 년 있으면 생기는 감각이 있다. 테이블 근처에만 가도 그 자리가 뜨거운지 차가운지 안다. 저 끝 테이블, 회장님이 앉은 자리에서 음산한 기운이 밀려왔다.

    창수는 가까이 가지 못했다. 두 테이블 건너에서 회장님 등만 봤다. 회장님은 창수가 온 것도 몰랐다.

    회장님 앞에 칩이 있었다. 어제 만든 600만 페소가 아니었다. 한참 줄어 있었다. 집에서 여기까지 오는 한 시간 반 사이에.

    그리고 회장님이 칩을 전부 밀었다.

    오링벳. 남은 걸 한 판에 다 거는 것.

    회장님은 카드를 받아 쪼지도 않았다. 힘없이 툭 던졌다. 딜러가 무심하게 카드를 뒤집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의 칩을 그대로 쓸어 갔다. 딜러는 바닥만 보며 칩을 정리했다. 떡집 기둥이 딜러 쪽 트레이로 옮겨 갔다.

    회장님 몸이 의자에 늘어졌다.

    고개가 천천히 뒤로 젖혀졌다. 카지노 천장에 커다란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다. 회장님은 그걸 올려다봤다. 초점이 없었다.

    창수는 그 얼굴을 이렇게 표현했다.

    창수: “형, 사형 선고 받은 사람 얼굴 본 적 있어요? 딱 그 얼굴이었어요.”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모른다. 창수에게는 아주 긴 시간이었다.

    컵라면

    리조트 방에서 컵라면을 먹는 회장님
    리조트 방에서 컵라면을 먹는 회장님

    회장님이 일어났다. 창수가 그제야 다가갔다.

    창수: “회장님…”

    회장님: “어, 왔냐. 뭐, 오링이지 뭐. 삽 됐네.”

    회장님은 웃었다. 웃는 얼굴이 더 아팠다.

    회장님: “일단 방으로 가자.”

    크림슨 리조트 방. 열흘을 잡아 둔 그 넓은 방에서 회장님은 컵라면을 하나 먹었다. 창수가 편의점에서 사 온 거였다.

    회장님: “삽 됐네, 삽 됐어. 창수야, 형 괜찮다. 너 들어가 있어.”

    열흘

    다음 날부터 전화가 왔다.

    회장님: “창수야, 200 들어왔다. 애들한테 얘기해서 페소로 바꿔 와라.”

    200만 원. 오링.

    다음 날, 300만 원. 오링.

    200, 300, 400, 200, 300, 200, 500. 열흘 동안 한국에서 들어온 돈이 3천만 원이 넘었다. 전부 제이파크 테이블에 녹았다.

    방값은 창수가 냈다. 밥값도, 택시비도 창수가 냈다. 그동안 모아 둔 가이드 수입과 가끔 받은 롤링피에서.

    그러다 이틀 동안 돈이 한 푼도 안 들어왔다. 열흘짜리 방은 끝나 가고 있었다.

    창수: “형님, 저희 집으로 가시죠.”

    회장님: “너 집에 애도 있고 제수씨도 있는데, 형이 어떻게 가냐.”

    창수는 그냥 둘 수가 없었다. 혼자 두면 무슨 생각을 할지 몰랐다. 오 사장한테 다 털린 건 회장님 탓이 아니었다. 1억을 팁으로 준 사람이었다. 돈이 되든 안 되든 끝까지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라푸라푸의 작은 집에서 불편한 동거가 시작됐다.

    한 달째, 500페소 테이블

    현지인들과 500페소 테이블에 앉은 회장님
    현지인들과 500페소 테이블에 앉은 회장님

    매일이 똑같았다. 휴대폰, 카톡, 전화. 휴대폰, 카톡, 전화.

    한국에서 100만, 200만 원이 들어오면 회장님은 막탄으로 나갔다. 라푸라푸에 워터프런트가 있었지만 굳이 익숙한 막탄으로 갔다.

    창수는 몇 번 따라 나갔다. 그리고 따라 나간 걸 후회했다.

    한 판에 1억 5천, 2억을 때리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500페소짜리 테이블에 현지인들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만 원짜리 칩 몇 개를 쥐고. 카드 받는 게 무섭다던 사람이, 2,000페소를 걸고 내추럴 9가 나오자 주먹을 쥐고 소리를 질렀다. 옆자리 필리핀 아저씨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창수는 그 얼굴을 보면서 화가 났다. 씁쓸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보다 짠했다.

    그 뒤로 창수는 웬만하면 따라 나가지 않았다.

    두 달째, 새벽 4시

    막탄에서 라푸라푸까지 밤길을 걷는 회장님
    막탄에서 라푸라푸까지 밤길을 걷는 회장님

    어느 날 아침, 200만 원이 들어왔다.

    회장님: “창수야, 오늘은 오지 마라. 형 혼자 갈게.”

    창수: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이 나갔다. 낮이 지나고, 저녁이 되고, 밤이 됐다. 열두 시가 넘었다. 새벽 두 시. 전화가 없었다.

    창수는 잠을 못 잤다.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가 안 들어와도 잠이 안 오는데.

    새벽 네 시. 현관문 따는 소리가 났다.

    회장님이 들어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 있었다. 셔츠가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신발과 바짓단에는 하얀 먼지가 덮여 있었다.

    창수: “형님, 밖에 비 와요?”

    회장님: “아니다. 생각할 것도 있고 해서, 걸어왔다.”

    창수: “어디서요?”

    회장님: “막탄에서.”

    막탄에서 라푸라푸까지 택시로 40분. 걸으면 두 시간에서 두 시간 반. 세부는 마닐라와 달라서 가로등도 드문드문하고, 길도 제대로 포장되지 않은 곳이 많다. 중간에는 밤에 혼자 다니면 안 되는 동네도 있다.

    200만 원을 바꿔 나가서 택시비까지 탈탈 털린 거였다. 그래서 땀과 먼지를 뒤집어쓰고 그 밤길을 걸어온 거였다.

    베란다

    새벽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우는 창수
    새벽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우는 창수

    회장님: “창수야, 담배 하나 줘라.”

    두 사람은 베란다로 나갔다. 라푸라푸의 새벽은 조용했다. 멀리 개 짖는 소리만 났다.

    회장님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젖은 셔츠에서 김이 올라왔다.

    창수는 그 옆얼굴을 봤다. COD 8층 통유리 방에서 맥스 800을 외치던 얼굴. 솔레어 2층에서 열 판을 연속으로 맞히던 얼굴. 공항에서 “너 써라” 하며 웃던 얼굴.

    눈물이 쏟아졌다. 참으려고 했는데 안 됐다.

    창수: “형님, 도대체 왜…”

    회장님: “그냥, 생각할 게 좀 있어서 걸은 거야. 형 괜찮아. 어른이니까.”

    창수는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창수: “식사는 하셨어요?”

    회장님: “라면이나 하나 끓여 줘라.”

    석 달째, 저녁

    그렇게 석 달이 지났다.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담배를 피웠다.

    어느 저녁, 회장님이 말했다.

    회장님: “창수야. 내일 돈 좀 들어올 거다. 그거 들어오면 형 나가야겠다.”

    창수: “형님, 그냥 여기 계시죠.”

    회장님: “아니다. 제수씨 보기도 그렇고, 애도 있는데 형이 베란다에서 담배나 피우고. 내일 방 하나만 알아봐 줘라. 싼 데로.”

    창수는 더 말리지 않았다.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가 아니었다.

    창수: “형님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창수는 그날 밤 생각했다. 내일 들어올 돈이 얼마든, 회장님은 그걸 들고 방으로 가지 않을 거라고.

    (9화에서 계속)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소설입니다. 등장인물 이름은 가명이며, 도박을 권하지 않습니다.

  • 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7화 – 일장춘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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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7화 – 일장춘몽

    팁 1억 300만 원으로 산 지분, 보름 만에 사라진 사장. 세부로 도망친 창수 앞에 3년 뒤, 얼굴이 반쪽이 된 회장님이 나타난다.

    창수에게 커피를 따라 주는 오 사장

    등장인물

    • 배창수: 전 마닐라 캐주얼 정켓 에이전트. 팁 1억 300만 원을 받은 지 보름 만에 모든 게 바뀐다.
    • 남궁 회장: 부산 건설회사 대표. 3년 만에 다시 창수 앞에 나타난다.
    • 오 사장: 창수가 소속된 캐주얼 정켓 대표. 창수에게 지분을 권한다.
    • 형님들: 마닐라에서 정켓 돈을 굴리는 사람들. 오 사장을 찾아 사무실에 들이닥친다.

    지분

    회장님이 떠나고 사흘 뒤, 오 사장이 창수를 불렀다.

    오 사장: “창수야, 고생 많았다. 남궁 회장 건, 우리 회사에서 이번 달 최고 실적이야.”

    창수는 웃었다. 오 사장이 창수 어깨를 두드리며 커피를 따라 줬다. 이렇게 친절한 오 사장은 처음이었다.

    오 사장: “팁 받은 건 네 개인 돈이니까 네 마음대로 써. 근데 형이 한마디만 하자. 그 돈 그냥 두면 녹아. 우리 회사 지분 좀 사라.”

    창수: “지분이요?”

    오 사장: “그래. 네가 봐서 알잖아. 이 바닥 돈이 어떻게 도는지. 지분 들어오면 롤링 나올 때마다 배당 줄게. 돈은 이렇게 버는 거야.”

    창수 머릿속에 COD 8층의 칩 기둥이 떠올랐다. 쇼핑백 속 벽돌들. 띵동, 띵동 울리던 입금 알림.

    돈은 이렇게 버는 거구나.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롤링피도 아직 안 받은 상태였다. 이 바닥은 롤링피를 당일 정산받으면 요율을 덜 주고, 월말에 받으면 더 준다. 0.1%, 0.15% 차이지만 굴린 금액이 크면 그 차이가 수백만 원이다. 창수는 월말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롤링피를 회사에 맡겨 둔 참이었다.

    창수는 의심하지 않았다. 스물여덟 살, 이 바닥 2년 차. 믿었던 형이었다.

    창수: “알겠습니다, 사장님.”

    창수는 태양성 계좌에 남아 있던 페소를 빼서 오 사장에게 넘겼다.

    보름째 되는 날

    빈 금고와 오 사장을 찾아온 형님들
    빈 금고와 오 사장을 찾아온 형님들

    사무실 문이 열렸다. 오 사장이 아니었다.

    남자 셋이 들어왔다. 창수도 얼굴은 아는 사람들이었다. 마닐라에서 오래 정켓 돈을 굴려 온 형님들. 오 사장이 늘 “우리 위에 계신 분들”이라고 부르던 사람들.

    형님: “오 사장 어디 갔어.”

    창수: “네? 오늘 아직 안 나오셨는데요.”

    형님: “오늘? 이틀째 연락이 안 되는데, 오늘?”

    다른 형님이 사무실 금고를 열었다. 비어 있었다.

    그제야 창수는 알았다. 오 사장이 이틀 전부터 전화를 안 받았던 이유. 창수가 맡겨 둔 롤링피. 지분이라며 넘긴 돈. 그리고 형님들이 정켓에 넣어 둔 디파짓까지. 오 사장은 전부 들고 사라졌다.

    이 바닥에서는 흔한 일이다. 나도 마카오에서 몇 번이나 봤다. 사장이 까고 나르는 일. 메인 정켓은 카지노에 보증금이라도 걸려 있으니 쉽게 못 도망간다. 하지만 캐주얼 정켓 사장은 걸린 게 없다. 손님 돈과 직원 돈을 들고 비행기 한 번 타면 끝이다.

    형님들은 창수를 한참 노려보다가 나갔다. 창수가 같은 피해자라는 걸 알아서였는지, 창수한테는 받아 낼 게 없다는 걸 알아서였는지는 모른다.

    1억 300만 원. 롤링피. 회장님 옆에서 굶어 가며 지킨 15시간.

    보름 만에 전부 사라졌다. 하룻밤 봄꿈. 일장춘몽이었다.

    세부

    세부 바다에서 가이드 일을 하는 창수
    세부 바다에서 가이드 일을 하는 창수

    창수는 마닐라를 떴다.

    창수: “형, 그때는 그냥 도망치고 싶었어요. 카지노 냄새도 맡기 싫었어요. 영어 공부나 하겠다고 세부로 갔죠.”

    세부에서 창수는 가이드 일을 시작했다. 공항 픽업, 호핑 투어, 골프장 예약. 가끔 한국 손님이 카지노를 찾으면 막탄이나 워터프런트로 안내했다. 크게 굴리는 손님은 받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서 결혼을 했다. 라푸라푸에 작은 집을 얻었고, 아들이 태어났다.

    회장님과는 가끔 통화를 했다. 명절이나, 회장님이 술에 취한 밤이면.

    회장님: “창수야, 너 없으니까 안 된다. 죽겠다, 죽겠어. 요새 뭐 하고 지내냐.”

    창수: “세부에서 가이드 하면서 착실히 지내고 있습니다. 결혼도 했습니다.”

    회장님: “그래, 잘했다. 열심히 살아라. 언젠가 좋은 날 오겠지.”

    회장님은 그동안에도 마닐라를 계속 다녔다. 다른 에이전트를 붙여서. 창수는 그 소식을 건너건너 들었다. 1,000만 원으로 2억 7천을 만들었다는 날도 있었고, 7억을 잃었다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3년 뒤, 막탄 공항

    3년 만에 막탄 공항에서 만난 회장님
    3년 만에 막탄 공항에서 만난 회장님

    어느 날 전화가 왔다.

    회장님: “창수야. 형 간다.”

    회장님은 어느새 스스로를 “형”이라고 불렀다.

    회장님: “세부는 놀러만 가 봤지 카지노는 모르는데, 어디가 좋냐.”

    창수: “라푸라푸에 워터프런트가 있고, 막탄에 하나 있고, 요즘 제이파크에 크림슨이 새로 생겼습니다.”

    회장님: “크림슨에 방 잡아 놔라. 이번엔 좀 오래 있을 거다.”

    창수는 크림슨 리조트에 방을 열흘 잡았다.

    막탄 공항 도착 게이트. 창수는 회장님을 한눈에 못 알아봤다.

    얼굴이 반쪽이 돼 있었다. 3년 전 1억을 툭 던져 주던 그 얼굴이 아니었다. 어깨가 좁아져 있었고, 걸음이 느렸다. 재킷이 헐렁하게 남았다. 풍기던 기운이 없었다.

    창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3년 동안 회장님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회장님: “오늘은 술이나 한잔하고, 게임은 내일부터 하자.”

    제이파크, 200만 페소

    제이파크 테이블에서 칩을 정리하다 멈춘 회장님
    제이파크 테이블에서 칩을 정리하다 멈춘 회장님

    다음 날. 회장님은 한국에서 미리 5천만 원을 창수 쪽으로 송금해 두었다. 3년 동안 연락만 하던 사이였지만, 회장님은 창수를 믿었다. 오 사장 일을 다 알고 있었으니까.

    5천만 원, 200만 페소. 제이파크 카지노.

    회장님은 테이블에 앉자마자 20만, 30만 페소씩 밀었다. 3년이 지나도 그 빠따는 그대로였다. 망설임 없이 들어가는 손.

    그리고 두 시간 만에 200만이 600만이 됐다.

    5천만 원이 1억 5천이 된 거다.

    창수는 그 칩을 보면서 3년 전 COD 8층을 떠올렸다. 회장님 손은 아직 살아 있었다.

    창수: “회장님, 일정도 기시니까 편하게 하시죠. 위로는 늘 하시던 대로 열어 두시고, 아래는 제가 잘 잠가 드리겠습니다.”

    회장님이 칩을 정리하다가 손을 멈췄다.

    회장님: “창수야.”

    창수: “네.”

    회장님: “형이 마닐라에서 도대체 얼마를 죽었는지 모르겠다.”

    창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회장님: “죽은 거 반만 찾으면, 반만 찾으면 이제 안 하고 싶다. 무섭다. 카드 받아서 숫자 확인하는 그 순간까지가, 이제는 너무 무섭다.”

    창수는 그날 처음으로 회장님 손이 떨리는 걸 봤다.

    회장님: “오늘은 안 한다. 내 이름으로 디파짓 해 놨으니까 너 집에 가서 쉬고 내일 와라.”

    다음 날 아침

    아침, 제이파크로 차를 모는 창수
    아침, 제이파크로 차를 모는 창수

    창수는 라푸라푸 집에서 잠을 깼다.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제이파크 정켓 룸이었다.

    “창수 씨, 손님 게임 시작하셨습니다.”

    창수는 시계를 봤다. 아침 아홉 시.

    회장님은 어제 분명 오늘은 쉬겠다고 했다.

    창수는 세수도 대충 하고 차에 올랐다. 라푸라푸에서 막탄 제이파크까지 40분. 차 안에서 창수는 3년 전 마닐라에서 받았던 전화를 떠올렸다.

    회장님이 먼저 찾는 건 딱 두 가지 경우다. 칩이 없거나, 돈이 없거나.

    그런데 오늘은 전화가 회장님이 아니라 정켓 룸에서 왔다.

    창수는 그게 더 불길했다.

    (8화에서 계속)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소설입니다. 등장인물 이름은 가명이며, 도박을 권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