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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5화 – 카드 긁는 소리

    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5화 – 카드 긁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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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5화 – 카드 긁는 소리

    솔레어 2층 태양성, 남은 1,500만 페소를 홍콩달러로. 카드 긁는 소리만 들리는 15시간, 그리고 개그림 속 맥스 열 판 연속.

    솔레어 2층 태양성 룸, 홍콩달러 칩을 두 줄로 세운 회장님

    등장인물

    • 배창수: 마닐라 캐주얼 정켓 소속 에이전트, 28세. 밥도 화장실도 참고 옆을 지킨다.
    • 남궁 회장: 부산 건설회사 대표, 50대 후반. 남은 1,500만 페소를 홍콩달러로 바꿨다.
    • 태양성 롤링 직원: 솔레어 2층 태양성 룸에서 회장님 롤링을 체크하는 남자 직원.
    • 딜러들: 한 슈마다 교대하는 태양성 룸 딜러들.

    오후 1시, 솔레어 2층

    솔레어 2층 태양성은 1층 플로어와 다른 세상이었다.

    커튼을 걷으면 창 아래로 호텔 수영장이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 마닐라 베이가 끝없이 펼쳐졌다. 바다 위로 화물선이 느릿느릿 지나갔다. 해 질 녘이면 물빛이 반짝여서 한국 손님들이 사진을 찍어 간다는 방이었다.

    오늘은 아무도 창밖을 보지 않았다.

    창수가 캐셔에서 받아 온 1,500만 페소를 홍콩달러로 바꿨다. 환율 6.5. 230만 홍콩달러하고 자투리가 조금.

    10만 홍콩달러짜리 칩 23개가 회장님 앞에 놓였다.

    창수: “회장님, 여기는 맥스가 100만 홍콩달러입니다.”

    회장님: “알아.”

    100만 홍콩달러. 원화로 1억 5천. 회장님은 그 숫자를 듣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칩 23개를 두 줄로 세우고, 첫 슈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오후 3시, 정적

    슈에서 카드를 뽑는 딜러의 손
    슈에서 카드를 뽑는 딜러의 손

    창수는 그날 방 안에서 들린 소리를 두 가지밖에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나는 딜러가 슈에서 카드를 뽑을 때 나는 소리. 서걱, 서걱, 서걱, 서걱. 한 판에 네 장, 많으면 여섯 장.

    다른 하나는 카드 셔플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끼릭, 끼릭, 끼릭.

    그 외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롤링 직원도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창수는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꿨다. 기침이 나올 것 같으면 침을 삼켰다. 조용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적막했다.

    회장님은 10만, 20만씩 걸었다. 먹고, 죽고, 먹고, 죽고.

    한 슈가 끝났다. 칩은 그대로였다. 두 번째 슈. 세 번째 슈. 230만이 270만이 됐다가 250만이 됐다가 다시 290만이 됐다.

    오후 6시, 300만

    300만 홍콩달러에서 멈춘 저녁, 지친 창수와 무표정한 회장님
    300만 홍콩달러에서 멈춘 저녁, 지친 창수와 무표정한 회장님

    네 번째 슈가 끝났을 때 칩은 300만 홍콩달러였다.

    한 슈에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네 슈면 다섯 시간. 창수는 점심도 못 먹었다. 배에서 소리가 날까 봐 배에 힘을 주고 앉아 있었다. 화장실도 못 갔다. 회장님이 슈를 바꾸려고 일어나 담배를 피우러 갈 때, 그때만 뒤로 빠져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돌아왔다.

    300만 홍콩달러. 창수가 속으로 계산했다. 230만으로 시작해서 70만을 땄다. 원화로 1억이 넘는다.

    그런데 이상했다. 회장님은 하나도 기뻐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창수가 이해한 건 이거였다. 회장님 머릿속 계산기는 원화로 돌아가지 않았다. 칩 개수로 돌아갔다. 어젯밤 COD에서 100개로 시작해 6,600개를 만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230개로 시작해서 300개. 70개를 딴 거다. 6,600개에서 300개면, 아직 10억이 넘게 빠져 있는 거다.

    저녁 8시, 레드불

    테이블에 놓인 에너지 드링크
    테이블에 놓인 에너지 드링크

    다섯 번째 슈에서 칩이 조금 움직였다. 350만, 400만.

    400만 홍콩달러를 넘긴 그때, 창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창수: “회장님,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식사라도 하시고 다시 정비해서 하시죠.”

    회장님: “아니다. 너라도 가서 밥 먹고 와라.”

    창수: “아닙니다. 저도 같이 있겠습니다.”

    회장님: “그럼 레드불이나 하나 시켜 줘라.”

    창수는 롤링 직원에게 레드불을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 회장님 옆에 앉았다.

    창수는 나한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다. 형, 그때 밥 먹으러 갔으면 어땠을까요. 그 뒤에 벌어진 일을 안 봤으면, 나도 좀 다르게 살았을까요.

    밤 10시, 개그림

    카드를 쪼는 회장님과 놀란 창수
    카드를 쪼는 회장님과 놀란 창수

    그리고 그게 시작됐다.

    이 바닥 사람들은 그걸 개그림이라고 부른다. 줄을 따라가면 꺾이고, 꺾으면 붙는다. 옆으로 갈 줄 알았더니 아래로 내려오고, 아래로 내려오나 싶으면 옆으로 간다. 투투인 줄 알았는데 원원이고, 원원인 줄 알았는데 투투가 된다. 그림판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어디에 걸어야 할지 모르는 구간. 십 년 넘게 카지노 바닥을 지킨 에이전트도 손을 놓고 구경만 하는 그림.

    보통 사람은 이 구간에서 다 죽는다.

    회장님은 이 구간에서 맞히기 시작했다.

    플레이어에 100만. 맥스였다. 딜러가 카드를 뽑았다. 서걱, 서걱. 회장님이 플레이어 카드를 받아 쪼았다. 8.

    뱅커에 100만. 서걱, 서걱. 뱅커 9.

    다시 플레이어. 100만. 플레이어 7 대 뱅커 6.

    창수는 셌다. 세 판, 네 판, 다섯 판. 일곱 판. 열 판.

    열 판을 연속으로 맞혔다. 한 판에 1억 5천짜리 판을.

    롤링 직원이 들고 있던 펜을 떨어뜨렸다. 펜이 카펫에 떨어지는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린 건 처음이었다고 창수는 말했다.

    새벽 4시, 15시간

    새벽, 칩 더미 앞에서 계산기를 든 창수
    새벽, 칩 더미 앞에서 계산기를 든 창수

    회장님은 멈추지 않았다. 먹고, 먹고, 죽고, 먹고. 그림이 아무리 꼬여도 회장님 칩은 계속 쌓였다.

    새벽 네 시. 슈가 끝나고, 회장님이 처음으로 손을 테이블에서 뗐다.

    회장님: “창수야. 계산해 봐라.”

    창수가 칩을 셌다. 롤링 직원이 다시 셌다.

    1,136만 홍콩달러.

    회장님: “한국 돈으로.”

    창수는 계산기를 두 번 두드렸다. 숫자가 맞는지 다시 두드렸다.

    창수: “회장님… 17억 400만 원입니다.”

    회장님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레드불 캔을 들어 마지막 한 모금을 마셨다.

    어젯밤 COD에서 최고로 올라갔던 숫자보다 많았다. 13억이 빠졌다가, 15시간 만에 전부 돌아오고도 남았다.

    창수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기가 15시간 동안 밥 한 끼, 물 한 모금 안 먹었다는 걸.

    회장님: “오늘은 여기서 멈추자. 정리 좀 해 봐라.”

    (6화에서 계속)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소설입니다. 등장인물 이름은 가명이며, 도박을 권하지 않습니다.

  • 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4화 – 본전의 기준

    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4화 – 본전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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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4화 – 본전의 기준

    "60개만 빼라." 세 시간 자고 불려 나온 창수, 5분마다 울리는 전화, 그리고 두 시간 만에 1,500만 페소만 남은 디파짓.

    솔레어 정문 앞에서 전화를 받는 창수

    등장인물

    • 배창수: 마닐라 캐주얼 정켓 소속 에이전트, 28세. 세 시간 자고 불려 나왔다.
    • 남궁 회장: 부산 건설회사 대표, 50대 후반. 태양성에 6,600만 페소를 맡겼다.
    • 태양성 직원 마크: 솔레어 태양성 룸 매니저. 창수에게 계속 전화를 건다.

    30분

    택시 안에서 창수는 태양성에 전화를 걸었다.

    창수: “남궁 회장님 디파짓에서 60개 아웃해 주세요. 회장님이 직접 가실 겁니다.”

    마크: “60개요? 확인했습니다.”

    마크 목소리에 아주 미세한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창수는 그게 기분 나빴다. 카지노 직원이 웃는 순간은 정해져 있다. 손님 돈이 다시 테이블로 돌아올 때다.

    솔레어 정문까지 30분도 안 걸렸다. 차에서 내리는데 휴대폰이 또 울렸다. 마크였다.

    마크: “창수 씨, 회장님이 찾으십니다.”

    창수는 걸음을 멈췄다.

    회장님이 직접 전화하지 않고 직원을 통해 자기를 찾는다. 이유는 하나다. 회장님이 지금 테이블에 앉아 있고, 손을 뗄 수 없다는 뜻이다.

    500개

    칩 없는 테이블에 앉은 회장님에게 칩을 가져가는 창수
    칩 없는 테이블에 앉은 회장님에게 칩을 가져가는 창수

    태양성 룸에 들어서자 회장님이 보였다.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 새 셔츠. 하지만 테이블 위에 칩이 없었다.

    회장님: “창수야, 500개만 가져와라.”

    창수: “회장님, 아까 60개…”

    회장님: “500만 가져와. 그리고 넌 올라가서 쉬고 있어. 내 방에서.”

    500개. 500만 페소. 1억 2,500만 원.

    60개를 뺀 지 한 시간도 안 됐다. 그 6,000만 페소가 어디로 갔는지 창수는 묻지 않았다. 아니, 물을 필요가 없었다. 칩이 없다는 건 그런 뜻이다.

    창수는 캐셔에서 500개를 받아 회장님 앞에 놓았다. 회장님은 고개만 끄덕였다. 창수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스위트룸의 5분

    빈 맥주병이 남은 스위트룸에서 휴대폰을 보는 창수
    빈 맥주병이 남은 스위트룸에서 휴대폰을 보는 창수

    회장님 스위트룸은 새벽에 나갈 때 그대로였다. 룸서비스 접시, 빈 맥주병 여섯 개, 소파 위의 재킷.

    창수는 재킷을 벗고 소파에 앉았다. 셔츠 단추를 하나 푸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5분.

    딱 5분 만이었다.

    마크: “창수 씨, 회장님이 500개 더 가져오시랍니다.”

    창수는 벗어 둔 재킷을 다시 집어 들었다.

    반복

    엘리베이터 앞 복도에서 전화를 기다리는 창수
    엘리베이터 앞 복도에서 전화를 기다리는 창수

    그다음부터는 창수도 순서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500개. 엘리베이터. 스위트룸. 전화. 500개. 엘리베이터. 1,000개. 엘리베이터. 500개.

    스위트룸 침대에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누우면 전화가 왔다. 앉아 있어도 전화가 왔다. 결국 창수는 엘리베이터 앞 복도에 서서 기다렸다. 전화가 오면 바로 내려갈 수 있게.

    복도 창으로 마닐라 베이가 보였다. 새벽에 회장님과 함께 동이 트는 걸 봤던 그 바다였다. 그때는 분홍색이었다. 지금은 한낮 햇빛에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두 시간.

    토탈 두 시간이 지났을 때, 마크가 전화로 숫자를 알려 줬다.

    마크: “회장님 디파짓, 1,500만 남으셨습니다.”

    3억 7,500만 원

    창수는 내려갔다.

    회장님은 테이블에 앉아 그림판을 보고 있었다. 뱅커와 플레이어가 아무렇게나 섞인, 줄도 핑퐁도 아닌 그림. 회장님 앞에 칩이 몇 개 남아 있었다.

    창수는 회장님 옆에 앉아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창수: “회장님. 지금 디파짓 1,500만 남았습니다.”

    회장님: “알아.”

    창수: “1,500만이면 3억 7,500만 원입니다. 회장님 2,500만 원 들고 오셨습니다. 지금도 3억 5천을 따고 계신 겁니다.”

    회장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수: “한국 들어가셨다가 다시 정비해서 오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긴 침묵이 흘렀다. 딜러가 카드를 섞는 소리만 났다.

    회장님: “그래. 알았다.”

    창수는 속으로 크게 숨을 내쉬었다. 됐다. 3억 5천이면 된다. 시곗줄 자국 난 손목에 다시 시계를 채울 수 있는 돈이다.

    회장님: “그럼 다 가져와.”

    창수: “네?”

    회장님: “1,500만 다 찾아와. 그리고 홍콩달러 칩으로 바꿔.”

    본전

    캐셔 앞에서 디파짓 영수증을 내려다보는 창수
    캐셔 앞에서 디파짓 영수증을 내려다보는 창수

    창수가 나한테 이 이야기를 할 때, 이 대목에서 한참 술을 안 마셨다.

    형, 사람 마음이 그렇더라고요. 회장님한테 본전은 이제 2,500만 원이 아니었어요. 100만 페소가 아니었어요. 6,600만 페소였어요. 어젯밤 태양성 영수증에 적힌 그 숫자.

    6,600만이 본전인 사람한테 1,500만은 3억 5천을 딴 돈이 아니에요. 13억을 잃은 돈이에요.

    창수 말이 맞았다. 이 바닥에서 십 년을 일하며 나도 수없이 봤다. 딴 사람은 딴 돈을 따지 않는다. 제일 높이 올라갔던 숫자를 기준으로 잃은 돈만 센다. 그리고 그 숫자를 되찾으려고 다시 앉는다.

    회장님에게 1,500만 페소는 남은 돈이 아니었다. 되찾아야 할 돈의 시작점이었다.

    창수: “회장님, 홍콩달러 게임은…”

    회장님: “솔레어 2층 태양성. 거기 조용하잖아.”

    창수는 알았다. 회장님의 3단계였다. 매주 2단계에서 꺾이느라 한 번도 제대로 가 보지 못한 그곳.

    그런데 이번엔 순서가 거꾸로였다. 끝판을 먼저 보고, 2단계에서 꺾이고, 이제 3단계로 가고 있었다.

    창수는 캐셔 창구로 걸어갔다. 1,500만 페소 출금 전표에 사인을 받는 동안 지갑 속 영수증을 꺼내 봤다. 6,600만 페소. 0이 몇 개인지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셌다.

    열두 시간 전에는 그 숫자가 기적이었다.

    지금은 빚처럼 보였다.

    (5화에서 계속)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소설입니다. 등장인물 이름은 가명이며, 도박을 권하지 않습니다.

  • 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1화 – 100만 페소

    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1화 – 100만 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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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1화 – 100만 페소

    2,500만 원을 들고 마닐라에 온 부산 건설사 회장님. 시계 없는 손목, 오카다에서 반토막, 솔레어 뱅커 줄. 매주 2단계에서 꺾이던 남자의 공식이 깨진 밤.

    COD 8층 통유리 VIP룸, 마닐라 베이 야경 앞 바카라 테이블

    등장인물

    • 나(강도윤): 마카오 에이전트 10년 차. 후배 창수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한다.
    • 배창수: 마닐라 캐주얼 정켓 소속 에이전트, 28세. 촉이 좋다.
    • 남궁 회장: 부산 건설회사 대표, 50대 후반. 강원랜드·마카오 VIP 출신, 매주 마닐라를 찾는 큰손.
    • 오 사장: 창수가 소속된 캐주얼 정켓 대표. 손님 돈 냄새를 누구보다 먼저 맡는다.
    • 딜러들: 오카다와 솔레어의 테이블을 지키는 사람들.

    시계 없는 손목

    공항에서 시곗줄 자국만 남은 회장님의 손목
    공항에서 시곗줄 자국만 남은 회장님의 손목

    마카오에서 에이전트 밥을 먹은 지 십 년이 넘었다. 이 바닥에 오래 있으면 숫자에 무뎌진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마닐라에서 일하던 후배 창수가 소주 세 병째에 털어놓은 이야기다.

    창수는 스물여덟에 마닐라로 넘어가 캐주얼 정켓 밑에서 일했다. 손님을 받아 카지노에 앉히고, 손님이 굴린 롤링에서 떨어지는 롤링피로 먹고사는 일이다. 손님이 크게 굴리면 창수도 먹고, 손님이 안 오면 창수도 굶는다.

    그런 창수의 제일 큰 손님이 남궁 회장이었다. 부산 건설회사 대표. 매주 금요일 밤 비행기로 와서 1억에서 3억을 굴리고 일요일에 돌아갔다. 창수 한 달 수입의 절반이 이 사람한테서 나왔다.

    회장님에게는 공식이 있었다.

    1단계, 리조트월드 VIP에서 몸을 푼다.

    2단계, 솔레어 VIP에서 판을 키운다.

    3단계, 홍콩달러 게임으로 끝을 본다.

    그런데 3단계까지 간 걸 창수는 거의 본 적이 없다. 회장님은 늘 2단계에서 꺾였다. 줄 한 번 잘못 타면 그대로 오링. 그래도 공항에서는 웃으면서 “다음 주에 보자” 하고 떠났다.

    그 주 목요일 밤, 전화가 왔다.

    회장님: “창수야, 이번엔 100만 페소만 준비해 놔라.”

    창수: “네? 100만 페소요?”

    회장님: “그래. 100만.”

    100만 페소. 원화로 2,500만 원. 억 단위로 오던 사람이 2,500만 원이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오 사장한테서 문자가 왔다.

    오 사장: “남궁 회장 이번 주 얼마 들고 온대?”

    창수는 잠깐 화면을 보다가 답장했다.

    창수: “100만 페소요.”

    답장은 금방 왔다.

    오 사장: “회사 어렵다는 말 돌던데. 외상 달라고 하면 절대 주지 마라. 너 책임이다.”

    금요일 밤, 니노이 아키노 공항 도착 게이트. 회장님은 평소처럼 웃으며 걸어 나왔다. 창수 어깨를 두 번 두드리는 것도 똑같았다.

    딱 하나가 달랐다. 오른쪽 손목.

    회장님은 늘 금색 롤렉스 데이데이트를 찼다. 테이블에 칩을 밀 때마다 시계가 조명에 번쩍여서, 딜러들 사이에서 “골드 미스터”로 통할 정도였다. 그 시계가 없었다. 손목에 시곗줄 자국만 하얗게 남아 있었다.

    창수는 묻지 않았다. 이 바닥에서는 묻지 않는 게 예의다. 하지만 그 하얀 자국을 보는 순간 알았다. 이번 100만 페소는 그냥 100만 페소가 아니라는 걸.

    오카다, 반토막

    오카다 마닐라 분수와 시끄러운 카지노 플로어
    오카다 마닐라 분수와 시끄러운 카지노 플로어

    회장님: “오카다 가자. 거기 요즘 판이 좋다더라.”

    오카다 마닐라는 그때 막 뜨던 곳이었다. 로비 분수 앞에 관광객이 몰려 있었고, 플로어는 아바타 게임 소리로 귀가 아팠다. 화면 속 딜러가 카드를 까면 수십 명이 한꺼번에 소리를 질렀다.

    회장님은 처음부터 서둘렀다. 평소 같으면 열 판은 그림만 보고 들어갔을 사람이 앉자마자 5만 페소를 밀었다.

    플레이어. 졌다.

    회장님: “다시.”

    플레이어. 또 졌다.

    세 판째에 10만 페소. 뱅커가 6으로 이기는 줄 알았는데 플레이어가 세 번째 카드로 7을 만들었다. 옆 테이블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회장님 쪽 판이 아니었다. 아바타 게임의 다른 판이었다. 그런데 그 소리가 꼭 회장님을 비웃는 것처럼 들렸다고 창수는 말했다.

    한 시간 만에 100만 페소가 52만 페소가 됐다.

    창수는 그때부터 회장님 옆얼굴만 봤다. 턱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회장님이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렸다. 강원랜드 시절부터 크게 지르기 직전에 나오는 버릇이었다.

    남은 52만 페소 중 40만 페소를 집어 드는 손이 보였다.

    창수: “회장님.”

    회장님 손이 멈췄다.

    창수: “여기 너무 시끄럽습니다. 솔레어 가시죠. 거기 조용한 테이블 하나 비워 놓으라고 하겠습니다.”

    이건 거짓말이었다. 솔레어에 전화한 적도 없었다. 그냥 저 40만 페소가 이 시장통 같은 테이블에 올라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회장님은 칩을 쥔 채 한참 창수를 봤다. 그러다 칩을 주머니에 넣었다.

    회장님: “그래. 여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차 안에서 회장님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마닐라 베이 쪽 불빛이 지나갔다. 창수는 운전석 뒤에서 핸드폰을 꺼내 솔레어 VIP 매니저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 가니까 조용한 테이블 하나만 잡아 달라고. 답장이 오기까지 2분이 20분 같았다.

    솔레어, 52만 페소

    솔레어 하이리밋에서 바카라 카드를 쪼는 회장님
    솔레어 하이리밋에서 바카라 카드를 쪼는 회장님

    솔레어 하이리밋 구역은 공기부터 달랐다. 카펫이 소리를 먹었다. 테이블마다 손님은 서넛, 딜러는 말이 없었다. 칩 부딪히는 소리, 카드가 펠트 위를 미끄러지는 소리만 났다.

    회장님은 앉았다. 그리고 이번엔 들어가지 않았다.

    한 판. 두 판. 다섯 판. 열 판.

    회장님은 그림만 봤다. 딜러가 카드를 돌리고, 다른 손님들이 칩을 따고 잃는 동안 회장님 손은 테이블 아래에 있었다. 창수는 그게 더 무서웠다고 했다. 오카다에서 서두르던 사람이 갑자기 너무 조용해졌으니까.

    열한 번째 판. 뱅커. 열두 번째 판. 뱅커. 열세 번째. 뱅커.

    회장님이 10만 페소를 밀었다. 뱅커.

    딜러가 플레이어 쪽을 먼저 깠다. 5와 2, 7. 강했다. 뱅커 쪽 카드 두 장이 회장님 앞으로 밀려왔다. 쪼는 건 가장 크게 건 손님 몫이다.

    회장님은 첫 장을 세로로 천천히 밀어 올렸다. 모서리에 점 하나가 보였다. 다시 조금 더. 점이 둘, 셋. 가운데가 비어 있었다. 6이었다.

    두 번째 장. 회장님이 이번엔 가로로 쪼았다. 손끝이 떨리는 게 창수 눈에도 보였다. 카드 옆면에 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림이거나 10이었다. 0점. 합이 6.

    6 대 7. 졌다.

    회장님이 졌다. 42만 페소 남았다.

    회장님은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다음 판에 다시 10만 페소를 뱅커에 밀었다. 이번엔 뱅커 내추럴 9. 쪼지도 않았다. 딜러가 까자마자 끝났다.

    다시 52만 페소.

    그다음 판, 20만 페소. 뱅커 8 대 플레이어 3. 72만 페소.

    그다음 판, 30만 페소. 뱅커. 102만 페소. 본전.

    그다음 판, 회장님이 50만 페소를 들었다.

    창수: “회장님, 본전 오셨습니다. 한 번 쉬시고…”

    회장님은 대답 대신 50만 페소를 뱅커에 밀었다.

    뱅커 쪽 카드가 다시 회장님 앞으로 왔다. 첫 장은 4. 두 번째 장. 회장님이 엄지로 모서리를 들어 올렸다. 점 하나. 두 개. 회장님이 그대로 멈췄다. 손가락만 카드 위에 얹은 채 3초, 5초.

    옆 테이블 손님까지 고개를 돌렸다.

    회장님이 카드를 확 뒤집었다. 5. 합이 9.

    플레이어 쪽은 볼 것도 없었다.

    152만 페소.

    줄을 끝까지 탄 남자

    뱅커 줄을 타고 쌓인 칩
    뱅커 줄을 타고 쌓인 칩

    그날 뱅커는 미친 듯이 이어졌다. 회장님은 줄을 붙였다. 꺾일 때까지 따라가는 거다. 여섯 번, 일곱 번. 판이 넘어갈 때마다 칩이 쌓였다.

    200만 페소. 280만. 350만.

    창수는 머릿속으로 롤링피를 계산하고 있었다. 이렇게만 굴리면 이번 주 창수 몫만 수백만 원이었다. 오 사장이 웃을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다 계산을 멈췄다. 회장님 손목의 하얀 자국이 눈에 들어와서였다.

    여덟 번째 뱅커가 나온 판. 회장님 앞에는 400만 페소가 넘게 쌓여 있었다. 이제 아홉 번째 판이었다. 줄을 붙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뱅커다. 회장님은 평소에 이런 판에서 맥스를 질렀다. 그리고 거의 매번 여기서 꺾였다. 2단계에서 꺾이는 회장님의 공식이 바로 이 판이었다.

    회장님이 칩을 집었다. 100만 페소.

    창수는 이번엔 말리지 않았다. 말려도 안 들을 걸 알았다. 그냥 눈을 감았다.

    칩이 펠트 위를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소리가 이상하게 짧았다. 창수가 눈을 떴다.

    회장님은 그 100만 페소를 자기 쪽으로 다시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딜러가 카드를 깠다. 플레이어 8. 뱅커 2.

    줄이 꺾였다.

    테이블에 있던 다른 손님 둘이 동시에 욕을 뱉었다. 둘 다 뱅커에 걸었던 사람들이었다. 회장님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고, 다음 판에 다시 들어갔다.

    창수는 그때 처음으로 회장님이 무섭다고 느꼈다고 했다. 이기는 사람이 무서운 게 아니었다. 꺾이기 직전에 손을 빼는 사람, 지금까지의 공식을 깨는 사람이 무서웠다.

    세 시간 뒤, 회장님 앞에는 520만 페소가 있었다.

    조용한 방

    새벽 마닐라 야경 앞에서 전화를 거는 창수
    새벽 마닐라 야경 앞에서 전화를 거는 창수

    새벽 한 시. 회장님이 칩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회장님: “창수야. 여기도 시끄럽다.”

    창수는 주위를 둘러봤다. 하이리밋 구역은 여전히 조용했다. 시끄러운 건 테이블이 아니었다. 회장님 머릿속이었다.

    회장님: “더 조용한 방 없냐. 한 판에 크게 갈 수 있는 데로.”

    창수는 알았다. 지금 회장님은 520만 페소를 들고 일어설 생각이 없다. 더 큰 판을 원한다.

    머릿속에 두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하나는 오 사장 목소리였다. 손님이 크게 굴리면 너도 크게 먹는다. 지금이 회장님 인생에 한 번 오는 날이다.

    다른 하나는 공항에서 본 하얀 시곗줄 자국이었다.

    창수는 핸드폰을 꺼냈다. 연락처를 내렸다. 시티 오브 드림스, 8층 정켓 룸. 회장님을 두 번 모셔 본 곳. 한쪽 벽이 통유리로 된 방. 맥스를 협상할 수 있는 방.

    통화 버튼 위에서 창수 엄지가 멈췄다.

    회장님: “왜, 없냐?”

    창수: “…있습니다.”

    창수는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세 번 갔다. 네 번째에 매니저가 받았다.

    창수: “8층 방 지금 비어 있어요? 남궁 회장님 모시고 갑니다. 그리고…”

    창수는 회장님을 한 번 쳐다봤다. 회장님은 520만 페소를 칩 랙에 한 줄씩 세워 담고 있었다.

    창수: “맥스 협상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2화에서 계속)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소설입니다. 등장인물 이름은 가명이며, 도박을 권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