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만 원에서 17억까지 5화 – 카드 긁는 소리
솔레어 2층 태양성, 남은 1,500만 페소를 홍콩달러로. 카드 긁는 소리만 들리는 15시간, 그리고 개그림 속 맥스 열 판 연속.

등장인물
- 배창수: 마닐라 캐주얼 정켓 소속 에이전트, 28세. 밥도 화장실도 참고 옆을 지킨다.
- 남궁 회장: 부산 건설회사 대표, 50대 후반. 남은 1,500만 페소를 홍콩달러로 바꿨다.
- 태양성 롤링 직원: 솔레어 2층 태양성 룸에서 회장님 롤링을 체크하는 남자 직원.
- 딜러들: 한 슈마다 교대하는 태양성 룸 딜러들.
오후 1시, 솔레어 2층
솔레어 2층 태양성은 1층 플로어와 다른 세상이었다.
커튼을 걷으면 창 아래로 호텔 수영장이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 마닐라 베이가 끝없이 펼쳐졌다. 바다 위로 화물선이 느릿느릿 지나갔다. 해 질 녘이면 물빛이 반짝여서 한국 손님들이 사진을 찍어 간다는 방이었다.
오늘은 아무도 창밖을 보지 않았다.
창수가 캐셔에서 받아 온 1,500만 페소를 홍콩달러로 바꿨다. 환율 6.5. 230만 홍콩달러하고 자투리가 조금.
10만 홍콩달러짜리 칩 23개가 회장님 앞에 놓였다.
창수: “회장님, 여기는 맥스가 100만 홍콩달러입니다.”
회장님: “알아.”
100만 홍콩달러. 원화로 1억 5천. 회장님은 그 숫자를 듣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칩 23개를 두 줄로 세우고, 첫 슈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오후 3시, 정적

창수는 그날 방 안에서 들린 소리를 두 가지밖에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나는 딜러가 슈에서 카드를 뽑을 때 나는 소리. 서걱, 서걱, 서걱, 서걱. 한 판에 네 장, 많으면 여섯 장.
다른 하나는 카드 셔플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끼릭, 끼릭, 끼릭.
그 외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롤링 직원도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창수는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꿨다. 기침이 나올 것 같으면 침을 삼켰다. 조용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적막했다.
회장님은 10만, 20만씩 걸었다. 먹고, 죽고, 먹고, 죽고.
한 슈가 끝났다. 칩은 그대로였다. 두 번째 슈. 세 번째 슈. 230만이 270만이 됐다가 250만이 됐다가 다시 290만이 됐다.
오후 6시, 300만

네 번째 슈가 끝났을 때 칩은 300만 홍콩달러였다.
한 슈에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네 슈면 다섯 시간. 창수는 점심도 못 먹었다. 배에서 소리가 날까 봐 배에 힘을 주고 앉아 있었다. 화장실도 못 갔다. 회장님이 슈를 바꾸려고 일어나 담배를 피우러 갈 때, 그때만 뒤로 빠져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돌아왔다.
300만 홍콩달러. 창수가 속으로 계산했다. 230만으로 시작해서 70만을 땄다. 원화로 1억이 넘는다.
그런데 이상했다. 회장님은 하나도 기뻐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창수가 이해한 건 이거였다. 회장님 머릿속 계산기는 원화로 돌아가지 않았다. 칩 개수로 돌아갔다. 어젯밤 COD에서 100개로 시작해 6,600개를 만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230개로 시작해서 300개. 70개를 딴 거다. 6,600개에서 300개면, 아직 10억이 넘게 빠져 있는 거다.
저녁 8시, 레드불

다섯 번째 슈에서 칩이 조금 움직였다. 350만, 400만.
400만 홍콩달러를 넘긴 그때, 창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창수: “회장님,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식사라도 하시고 다시 정비해서 하시죠.”
회장님: “아니다. 너라도 가서 밥 먹고 와라.”
창수: “아닙니다. 저도 같이 있겠습니다.”
회장님: “그럼 레드불이나 하나 시켜 줘라.”
창수는 롤링 직원에게 레드불을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 회장님 옆에 앉았다.
창수는 나한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다. 형, 그때 밥 먹으러 갔으면 어땠을까요. 그 뒤에 벌어진 일을 안 봤으면, 나도 좀 다르게 살았을까요.
밤 10시, 개그림

그리고 그게 시작됐다.
이 바닥 사람들은 그걸 개그림이라고 부른다. 줄을 따라가면 꺾이고, 꺾으면 붙는다. 옆으로 갈 줄 알았더니 아래로 내려오고, 아래로 내려오나 싶으면 옆으로 간다. 투투인 줄 알았는데 원원이고, 원원인 줄 알았는데 투투가 된다. 그림판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어디에 걸어야 할지 모르는 구간. 십 년 넘게 카지노 바닥을 지킨 에이전트도 손을 놓고 구경만 하는 그림.
보통 사람은 이 구간에서 다 죽는다.
회장님은 이 구간에서 맞히기 시작했다.
플레이어에 100만. 맥스였다. 딜러가 카드를 뽑았다. 서걱, 서걱. 회장님이 플레이어 카드를 받아 쪼았다. 8.
뱅커에 100만. 서걱, 서걱. 뱅커 9.
다시 플레이어. 100만. 플레이어 7 대 뱅커 6.
창수는 셌다. 세 판, 네 판, 다섯 판. 일곱 판. 열 판.
열 판을 연속으로 맞혔다. 한 판에 1억 5천짜리 판을.
롤링 직원이 들고 있던 펜을 떨어뜨렸다. 펜이 카펫에 떨어지는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린 건 처음이었다고 창수는 말했다.
새벽 4시, 15시간

회장님은 멈추지 않았다. 먹고, 먹고, 죽고, 먹고. 그림이 아무리 꼬여도 회장님 칩은 계속 쌓였다.
새벽 네 시. 슈가 끝나고, 회장님이 처음으로 손을 테이블에서 뗐다.
회장님: “창수야. 계산해 봐라.”
창수가 칩을 셌다. 롤링 직원이 다시 셌다.
1,136만 홍콩달러.
회장님: “한국 돈으로.”
창수는 계산기를 두 번 두드렸다. 숫자가 맞는지 다시 두드렸다.
창수: “회장님… 17억 400만 원입니다.”
회장님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레드불 캔을 들어 마지막 한 모금을 마셨다.
어젯밤 COD에서 최고로 올라갔던 숫자보다 많았다. 13억이 빠졌다가, 15시간 만에 전부 돌아오고도 남았다.
창수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기가 15시간 동안 밥 한 끼, 물 한 모금 안 먹었다는 걸.
회장님: “오늘은 여기서 멈추자. 정리 좀 해 봐라.”
(6화에서 계속)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소설입니다. 등장인물 이름은 가명이며, 도박을 권하지 않습니다.










